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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밤.

nbp. 2017. 2. 22. 02:28

많은 눈이 내려 녹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모든 게 차갑고 더럽고 추적거리는 연휴의 시작인 어느 밤, 번화가에 속한 선술집에서 친구 몇 명과 술을 마셨다. 술이 어느 정도 올라오고 자리가 점점 달아오를 무렵, 선술집위기와는 사뭇 어울리지 않은 노이즈가 느껴졌다. 미묘하게 어긋나 오히려 신경 쓰이는 이질감의 노래. 건너편 자리에 이쁘장한 여자 둘이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오토시 나오는 삶은 완두콩과 오크라 무침에 녹색 소주병만 놓인 테이블에 앉아 진지한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며, 양손을 잡고 노래를 불렀다.


엄마가 섬 그늘에 따러 가면 

  아기는 혼자 남아 집을 보다가

  바다가 불러주는 자장 노래에

  베고 스르르르 듭니다.

  아기는 잠을 곤히 자고 있지만

  갈매기 울음소리 맘이 셀레어

  굴바구니 머리에 이고

  엄마는 모랫길을 달려옵니다.”


서늘하고 스산한 노래에 우리가, 따뜻하고 쓸쓸한 음색에 다른 테이블에서도 그 노래를 인지한 듯했다. 각각의 대화도, 주방의 소리도, 선술집의 음악도 온풍기의 소음도 모두 없어졌다. 그 노래가 언제 사라진 지, 그 정적이 어떻게 해소됐는지, 노래를 불렀던 여자들의 사연이 뭐였는지, 그들이 어떻게 사라졌는지, 그 밤이 언제였는지, 어제였는지, 몇 년 전이었는지, 누구와 술을 마셨는지 따위는 별로 중요하지 않아. 그 정적 한밤의 무색한 나트륨등같이 남아 있다. 그때 그곳에서 모두는 어떤 공명을 공유했고, 그녀들로 인해 공통된 경험을 했다. 그건 기억도 추억도 아닌 알 수 없는 종류의 잊히지 않는 무언가 기묘한 일이었다. 겨울을 헤매는 밤이면 가끔 떠오르는 에피소드. 지긋지긋한 겨울이 끝나고 추운 봄이 왔다가 봄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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